어제(9월 4일) 용인에서 열렸던 '백남준의 선물.2' 국제세미나에서 폭발적인 쟁점 중의 하나는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것이었다. 나는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에 아방가르드적 혁명적 예술가의 역할은 자본에게 소유되어 있는 예술수단을 훔쳐 다중에게 돌려주는 스파이가 되는 것이라는 스파이론을 제시했다. 이 문제에 관해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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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라는 말은 잠재성의 수준에서 정의되는 것을 넘어선다. 다중은 잠재적으로 예술가이지만 단지 잠재적으로만 다중이 예술가인 것만은 아니다. 다중은 매일매일 예술가이기를 강요받고 있고 그것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로 단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정의 미적 예술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예술가화를 강제하고 재촉하고 촉진한다.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임금도 없다는 것이 신경제의 논리이다. 포스트포드주의는 구상, 상상의 기능을 노동자에게 넘김으로써 노동하는 사람들은 실행하는 주체일뿐만 아니라 구상하는 주체, 상상하는 주체, 기획하는 주체, 창조하는 주체로 된다. 매순간 노동자가 예술적일 것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물론 누구나가 예술가라는 말을 사실주의적 재현의 술어로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다. 현실에서 누구나가 예술가이므로 예술가란 현실에서 우리가 흔히 발견하는 범상한 사람들 이상이 아니다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현실의 저변에서 보통사람들의 예술가다움을 자주 목격하고 그것에 놀라지만 그렇다고 이미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부른다면 강변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는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 그러니까 잠재성의 현실화를 향한 강력한 경향의 정의로서 사용되는 것이 가장 적실할 것이다.
2.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의 이미지를 노동과정/노동시간에서만 표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또 전형적이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이 자본에 포섭된 운명만을 부각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과정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단절이기도 한 투쟁과정/투쟁시간 속에서 예술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촛불시위와 집회는 거대한 집체예술이었다. 구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전개되는/된 집체예술이 중앙에서 철저하게 계획되고 조직되고 통제되는 집체예술이었다면 촛불집체예술은 특이한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또 자율적인('자율적'은 '자발적+의식적'이다) 참여에 의해 꾸며진 집체예술이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의 역동적 숨결과 행동, 매순간 이루어진 어떤 폭발들, 기술들이 예술로 전화되었다. 와이브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생중계방송, V for 벤뎃타, 민중가요들, 춤, 피켓, 포스트잇, 플랭카드, 사물놀이패, 함성, 컴퓨터, 인터넷, 양초, 전기초, .... 온갖 것들과 온갖 사람들이 집체예술의 획과 텃치로 짜여져 들어왔다. 그것은 시공간을 유동화시키는 강력한 힘이었다. 다크 매터(dark matter), 다크 에너지(dark energy)가 폭발하여 가시성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밤샘시위는 낮밤의 구별을 깨뜨렸고 도로는 행진로로 바뀌었다. 시공간의 역전은 백남준의 예술이상이지 않았던가? 서울 도심은 촛불빛이 쏘아져 만들어진 거대한 스크린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비디오아트였으며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된 디지털 컴퓨터네트워크 아트였다. 그것은 위성예술의 이념을 메트로폴리스에서 실현한 사건이었다. 이 예술적 대사건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능력을 자본으로부터 훔쳐내 다중의 투쟁 속으로 돌려준 스파이들로 기능했으며 사람들 누구나가 스스로 의식했건 아니건 상관 없이 하나하나 예술가였다.
3. 2009년 7, 8월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공장을 생각해 보자. 7월 하순부터 공장위로 헬기가 난다. 치치치치하고 끊임없이 나는 헬리콥터 소리, 투항을 권유하는 사측의 선무방송, 사측이 틀어놓은 감상적 노래들, 지원온 사람들의 웅성거림, 야간집회에서 들리는 연설소리, 파업노동자들의 투쟁구호. 이것들이 쌍용자동차 공장을 뒤덮었던 소리들이다. 누구나가 소음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을 이 혼합된 소리들의 동시성을 백남준이 작곡하고 연주한 음악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칠 것인가? 쇤베르크를 맑스와 결합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백남준의 음악을 듣는 것은 인내를 요구한다. 아니다. 인내보다 주의깊음을 요구한다라고 해야 한다. 주의깊은 귀는 음의 세계에서 추방된 소리들, 배제의 음성들을 들을 수 있다. 청음과 소음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소리세계의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소리 세계를 가르고 있는 분단선을 철거하자는 것이다. 소음을 예술음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예술개념 그 자체의 혁신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예술실천 자체의 변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 역사적 인간은 그 시대 속에서 특정한 음만을 음으로, 나머지를 비음이나 소음으로 인식하도록 훈련받는다. 소리감각은 역사적인 것이다. 맑스는 모짜르트를 들을 수있는 귀가 역사적 노동의 산물이라고 했지만 삶을 가로질러 흐르는 온갖 소리들을 예술음으로 들을 수 있는 귀도 역사적 노동의 산물이라고 해야 한다. 소음을 예술로서 주목하는 것은 바우만이 쓰레기들이라고 불렀고 아감벤이 호로사케르라고 불렀던 존재들을 무력존재로 보지 않고 마치 맑스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이름을 통해 그렇게 했듯이 이들의 존엄과 힘과 절대적 특이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이것은 바흐찐이 장편소설론에서 시장의 웅성거림(多聲)에 기울였던 주목을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4. 백남준은 정확히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를 예상(prefigure)하고 있다. 권력자 앞에서 바지를 내린다거나, 소머리를 잘라 전시장 앞에 내건다거나 피아노나 바이얼린을 파괴하는 것은 예술세계의 금기를 깨는 것이다. 금기의 파괴, 금기에 대한 테러. 그런데 금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금지되고 있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 기피하는 것이다. 금기에 의해 짜여진 세계는 이미 테러에 의해 조직된 세상이다. 금기된 것을 피해 만들어진 예술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뭔가를 테러하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모든 미-문학, 미-회화, 미-음악은 추하다고 간주되는 것에 대한 테러이다. 그것을 통해 추들(소음들, 보기 싫은 것들, 더듬대는 말들, 요컨대 소외되고 힘 없는 존재들, 말할 수 없는 서발턴들)은 배제되며 가시계 밖으로 밀려난다. 마치 대도심에서 노숙자들이 쉼터로 감춰지고, 반대자들이 감옥으로 감춰지고, 불안정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지하골방이나 후미진 외곽으로 감춰지듯이. 그리하여 대도시가 빌딩들의 숲으로, 번득이는 자동차들의 물결로, 가진자들의 으쓱대는 몸짓들로 가득차듯이. 이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이 위조된 세계의 냉혹함에 대해 테러충동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백남준은 이 위조된 예술세계, 대도시세계의 경계 밖으로 관객과 청중들의 관심과 시선을 돌리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백남준 예술 스파이의 독특한 작업방식이었다.
5. 누구나가 예술가인 시대라는 표어가 갖는 의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자는 것, 아니 그 달이 바로 우리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자는 것이다. 고전적 예술가임을 자처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전시, 출판, 연주될 것을 예상하고 추구하고 또 그것을 권리로서 요구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도 골방에 숨겨두고 혼자 흘깃대며, 시를 쓰고도 일기장에만 남겨두고 노래를 흥얼대다가도 누가 들을까봐 곧 멈춰버린다. 저자author로서의 권위authority있는 예술가의 존재는 다중을 비예술가로 만든다. 기존의 예술제도를 통해 다중의 예술적 능력은 억압된다. 노동과정의 예술화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이 억압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 다중이 바로 예술적 능력의 원천이자 담지자이자 발휘자라는 사실을 실제로서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UCC에서 우리는 다중의 예술능력을 확인한다. 현행의 UCC들은 잠재적 UCC의 극히 일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을 돌아보자.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뭔가 서로 이야기와 표정을 주고받으며 음식을 접시에 들고 나르고 몸이 부딪치지 않도록 피하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 상을 닦고 있다. 컷트! 무한히 반복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삶을 잘라 그 단면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곳에 복잡한 시간들, 계략들, 흐름들의 연결접속, 분리접속, 통합접속이 있다. 손님들은 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을 느끼며 식당을 나가지만 음식의 맛과 쾌감까지 갖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기억 속에 남을 수 있겠지만 잘라진 삶의 그 단면 속의 사건으로 끝난다. 왜 우리들은 일상을 아름다움으로 감각할 수 없게 되었을까? 왜 아름다움을 미래의 것으로 연기시켜놓게 되었을까? 그래서 백남준조차도 Tomorrow, we will be beautiful!이라고, 즉 내일에서야 우리가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을까? 아름다움을 내일로 연기하는 것, 그래서 오늘 아름답지 않아도 견디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즉각적으로 매순간 아름답고자 하는 예술실천, 다시 말해 Now, we are beautiful!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한 결단이야말로 새로운 혁명의 대원칙이다. 이것이 현실수긍주의, 실증주의, 정치적 순응주의의 나락으로 빠지는 길은 아닐까? 그럴 염려는 없다. 우리는 더 아름답고자 하며 새롭게 아름답고자 하고 아름다움의 도약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6. 다중은 기술의 새로운 용법의 발명자일 것이고, 비가시적 물질이나 에너지의 저장고이자 운반자일 것이며, 오래된 담들을 넘어 흐르는 파쿠르(parcour) 능력자들일 것이다. 차이들의 하이브리드가 다중일 것이다. 고전적 예술가의 예술행위에서 하이브리드는 실험에 머무른다. 만약 그것을 예술의 고유한 형태로 이해하고 그것에 고착된다면 그것은 중생계를 자신의 외부로, 오브제로 남겨놓으면서 반복되는 매스터베이션과 유사할 것이다. 어떻게 좁은 예술가 작업실을 넘는 다중적 하이브리드가 가능할 것인가? 자연-기계-인간 사이의 하이브리드는 근대사회, 근대공화국을 규정하고 있는 위계제 동형성(isomorphism)을 깨지 않고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을 깨는 경향은 강력하고 그 강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이다. 백남준의 예술이상의 실현은 다중예술의 개진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다중예술의 개진이라니? 그것은 삶을 예술의 아뜰리에이자 무대로 만드는 실천이다. 그리고 꼭 따로 해야 할 말이지만 이것에는 캔버스보다 아주 넓고 크며 스크린보다도 넓고 크며 1003개의 모니터를 결합한 작품 <다다익선>보다도 더 커서 낡은 눈이나 귀로는 보고 들기 어려울 작품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사건적 작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예술감각의 형성과 단련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혁명적 예술가에게 역할이 있다면 바로 이 형성과 단련의 과정에 함께 하기 위해(스스로 배우면서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함께 한다'이다) 도우면서 예술계에서 예술수단들과 예술능력들을 훔쳐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7.그러므로 백남준을 새로운 기법, 새로운 장르, 새로운 스타일의 개척자로 한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가 던진 문제들의 상당부분을 덮어버리는 일이며 그의 가능성의 핵심을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단정하는 해석방식이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를 혁명가로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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