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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현실의 Easton 모형에의 적용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중심으로 (1985∼1987) >

1. 당시 전두환 정권의 성격(Political System)      : 국민적 정당성을 결여한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 정치체제  

2. 시대적 환경(Environment)

(1) 정치 : 1983년말에서부터 1985년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체제 정비를 마친 권력이 탄압을 일정 정도 완화시켜 이른바 유화 국면이 전개되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학원정책의 변화로 시작된 이러한 유화조치는 5공화국정부의 고육책이자 1980년 이후 3년간의 정치적 경험을 통해 통치능력을 강화한  5공화국이 그에 기반해 나름대로의 정치적 자신감을 근거로 공세적으로 채택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치'가 완전히 배제된 지배보다는 '정치'를 병행하며, 궁극적으로 '정치적' 지배로 이행하는 것이 지배세력 전체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독재권력의 '유화'보다 이를 계기로 복구된 민족 민주 세력의 '강화'가 더 두드러졌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학생 운동은 강력한 조직적 투쟁을 통하여 독재 권력에 도전했으며, 노동 운동 역시 조직적 연대를 모색하면서 점차 정치투쟁적 성격을 강화시켜 나갔다. 재야 세력도 조직적 통일을 적극 모색하였다. 한편 체제 정비기에 제도권 밖으로 배제되었던 재야 야권은 1984년 5월 '민주화 추진 위원회(민추협)'을 결성하며 점차 정치활동의 여지를 넓혀가다 1985년 2월 12일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의 이름으로 승리함으로서 일거에 제1야당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2) 경제 :  1980년을 전후해 세계적인 공황의 영향과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한 마이너스 성장과 외채의 급증이라는 상황에 등장한 5공화국은 경제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경제안정정책이 외부환경의 변화와 물가안정정책의 성과라는 유리한 조건과 맞아 떨어져, 한국경제가 외형상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 경기회복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집권과정에서의 정당성 결여를 경제적 업적으로 메우려는 전두환 정권의 의지가 성공한 것 처럼 보여 전정권은 정권의 안정화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다. 정치적 유화조치는 어느정도 이러한 정권의 자신감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정권의 경제업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전정권에 대한 '신뢰' 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3) 사회 : 당시 한국 사회는 정치적 선호를 놓고 국민들 사이의 심각한 분열상태가 표출되고 있었다. 즉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거나 그것을 야당이나 재야보다 선호하려는 국민층과, 그 정권을 반대할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강한 적대심 또는 반감을 갖는 국민층 사이의 차이와 구별이 매우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 과거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폭력에 의해서라도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전투적인 정치적 성향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0년대의 한국사회는 정권을 놓고 찬성과 반대라는 선명한 선호패턴을 나타내는 균열구조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권세력과 반대세력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양극화된 불안정한 정치문화로 변해가고 있었다.

3. 진행과정(Input, Output, Feedback)

제 1 기

(1) 투입 : 전두환의 1986. 1. 16 국정연설에서 88년 평화적 정권교체가 끝난후에 개헌논의 시사에 대한 Feedback으로써 청년·학생 및 사회운동단체들은 2월 4일 서울대집회에서 '헌법철폐투쟁대회 및 개헌서명운동 추진본부 결성식'을 갖고 이를 계기로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헌법쟁취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신민당도 2월 12일 ‘2·12총선 1주년기념식’을 기해 1천만 개헌서명운동을 전격적으로 시작함으로써 민주헌법쟁취투쟁에 가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민우 신민당총재와 양김씨는 난국타개 6개항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1986년 가을 대통령직선제 개헌완료, 87년 가을 대통령선거 실시 등 제도권정치의 복원을 주요내용으로 한 것이었다.(Demand) 여기에서 직선제쟁취라는 당면의 정치적 목표를 같이하는 신민당 등 야권과 민주화운동세력간에 민주대연합이 형성되었다. 1986년 3월부터 신민당은 개헌추진위 각 지부 결성식을 통해 직선제개헌쟁취투쟁을 대중집회의 형식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3월 30일 광주에서 개최된 '개헌추진위 전남지부 결성대회'에 35만 명의 시민이 참가하여 직선제개헌쟁취투쟁의 대중성을 크게 고양시켰으며, 지식인·종교인·교수들의 시국성명 역시 이 시기 직선제개헌의 당위성을 대중적으로 선전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Support)

(2) 산출 : 이와 같이 개헌 서명 운동이 장외에서 급속히 확산되자 5공 정권은 임기내 개헌 불가의 당초 입장에서 물러나, 신민당과 재야를 분리시키고 개헌 논의를 정치권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1986. 4. 30 전두환은 청와대 3당 대표 회동에서 국회가 합의한다면 임기내 개헌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Decision) 그러나 국회내 합의 개헌이 지지부진하자 5공 정권은 여야 합의 개헌보다는 '합의성 합법 개헌', 곧 일부 야권과 결탁하여 다수의 힘으로 의원 내각제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모색하였다. 그 과정에서 12월 24일 '이민우 구상'이 나왔다. 이민우 구상의 핵심적인 내용은 7개항의 민주화가 선행된다면 내각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1987. 2. 12일 민정당 확대간부회의는 '내각제 합의개헌'을 부동의 당론으로 재확인하였다. (Policies)  

제 2 기   Feedback

(1) 투입 : 이민우 구상이 공론화 되던 1986년 12월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는 대통령 직선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재야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였다. 그들은 1987년 4월 74명의 국회 의원과 더불어 신민당을 탈당하여 신당창당을 선언하였고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Demand, Support)

(2) 산출 : 국회내 개헌 논의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여당과 재야를 갈라놓는데 성공한 5공 정권은, 그 사이 재야 운동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그들의 세력을 꺾어 놓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국민대중과 양 김씨의 이민우 구상에 대한 반대로 내각제 개헌을 통하여 보수대연합적 지배구도를 정착시키려던 의도가 좌절되었으며, 양 김씨와 재야의 거쎈 반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5공 정권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하며 헌행 헌법으로 차기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호헌조치를 취하게 된다. (Policies)

제 3 기   Feedback

(1) 투입 : 5공화국이 선택한 무모한 4·13호헌조치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초기에는 광범위한 지식인들의 성명전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대중적으로 강력하게 조직되었다. 4·13분쇄와 직선제쟁취투쟁이 점차 대중적 세를 형성하던 5월 27일 재야와 통일민주당등 80여 명의 각계대표가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발기인대회 및 결성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운동본부는 6·10대회를 박종철사건 조작 규탄뿐만 아니라 4·13호헌조치의 철회와 민주개헌쟁취에도 초점을 맞추기로 함으로써 정치국면의 성격을 개헌공방으로 보다 분명히 규정하였다. 국민운동본부의 결성으로 인하여 4·13호헌조치 전 1년여에 이르는 개헌운동과 4·13호헌조치 직후부터 전개된 민주헌법쟁취운동이 결여하고 있던 정치적 구심이 건설됨으로써 민주헌법쟁취운동은 전국적·전국민적 대중정치투쟁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이제 '6월항쟁'이라고 불리우는 범국민적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Demand, Support)

(2) 산출 : 이 같은 민중들의 대규모 투쟁에 결국 5공화국 정권은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을 통해 일단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수용, 대통령 선거법 개정, 김대중씨 사면 복권 및 극소수를 제외한 시국 관련 사범 석방, 국민 기본권 신장, 언론 자유 창달, 지방 자치제 실시와 대학의 자율화,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과감한 사회 정화 조치등 8개항을 약속 했다. (Policies)

4. 結

 이상으로 6·29 선언이 나오기 까지의 정치적 과정을 Easton의 체제모형에 적용을 해보았다. 그런데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야당과 민주화 세력들의 요구와 그에 대한 산출로써 도출된 정책을 볼 때, 그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이라기 보다는 당시 집권세력의 정치체제를 유지시키며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미봉책으로써의 정책이라는 성격이 짙다. 이렇게 볼 때, 산출로써 나타나는 정책이 언제나 투입에 부응하여 결정되는 것이라는 Easton모형은 당시 한국사회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본 글은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치과정론' 강의(1998, 이대규교수님)때 'David Easton 모형의 현실적용'이라는 주제에 대해 94학번 이병권, 김광진 95학번 차선희가 조사하여 발표했던 글입니다.



삶정치적인 공통적 생산의 산물이 사유화되어 공적 자금이라는 형태로 축적된다. 학진 기금이나 문예진흥 기금은 그러한 자금의 일부이다.

이에 대한 태도들이 몇 가지 존재한다.
1. 공적자금은 임금 이외에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임금의 한 형태이므로 적극적으로 받아서 사는 데 이용하자.
임금의 획득이 노동자간의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사회적 임금도 시민 개인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획득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장 부르주아적인 생각이며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노동자간 경쟁을 자연화하고 그만큼 부르주아 사회를 추인한다. 공적 자금의 사적 사용론.

2. 공적 자금을 받아서 공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한다면 되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임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고 사회적 임금형태의 자금이 필요하다.
---일단 공적 자금의 수여가 경쟁과 시험에 의해 주어진다는 점을 건드리지 않은 채, 이 틀 내에서의 내용적 사회성을 추구한다. 공적 자금의 공적 사용론.

3. 공적 자금은 공을 대표하는 국가가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형태이므로 공적 자금은 받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활동을 위해 부족한 임금은 사적 영역에서의 더 많은 노동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좋다.
--사적인 영역 역시 공적 영역과 똑같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공간이자 장치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임금도 사회적 임금 과 동일하게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정치적 형태이다. 그리고 이 관점은 공적 자금에 대한 회피가 삶정치적 공통적 생산의 산물에 대한 사유화를 온존시키고 그 자금이 생산자들에게 더 불리한 방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공적 자금 회피론.

오늘날 사적 축적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공적 자금의 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다. 거대한 사적 축적과 거대한 공적 축적은 우리의 삶을 압살하고 있다. 이 경쟁체제에 기생하거나, 혹은 공사의 환상적 구분 위에서 공을 거부하고 사를 선택하는 것은 현존하는 착취와 지배 구조에 대응할 수 없다. 이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이 찾아져야 한다.

사적 권력의 관심과 이해라는 필터를 통과함으로써만 사회적 임금의 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현존하는 구조를 깨뜨릴 수 있게 위해서는 공적 자금을 공통기금으로 전환시키키고 이 공통기금을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공통기금은 어떠한 심사도 허가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적 자금만을 건드리고 사적 축적 메커니즘을 건드리지 않고 놓아 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운동은 사적 영역 자체의 근본적 변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소득은 정치적으로 불균등하게 조직되어 있다. 특히 정규직, 비정규직, 실업자의 구획에 따른 소득의 차별화는 극히 정치적이다. 그 차별의 정도는 극심해서 거의 무한배에 가까운 소득차가 난다. 무조건적 보장소득은 이 차별의 골간을 깨뜨릴 수밖에 없으며 만인의 삶의 보장을 통해 공포, 적대, 배제를 최대한 제거하게 될 것이다. 노동에 따른 가외소득의 규모는 무조건적 보장소득이 창출할 공통성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 자금의 공통기금화와 무조건적 보장소득, 노동에 따른 가외소득이라는 잠정노선을 통해서 오늘날 공사의 구분 위에서 전개되는 거대한 사적 공적 자금들의 전횡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것은 올바른 노선의 확정 문제를 넘어서는 공통적 실천의 조직화를 요구한다. 다중의 집단지성과 공통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HEDONISMA SPIRITUALECO NEW AGE
Tibeto kaptita en la revo de la alia

de  Slavoj ŽIŽEK  
http://eo.mondediplo.com/article1362.html

LA RAPORTAĴOJ disvastigataj de la komunikiloj trudas al ni certan bildon kiu estas gurdata tiel : la Popola Respubliko Ĉinio, kiu ekokupis kontraŭleĝe Tibeton en 1950, okazigas de jardekoj brutalan kaj sisteman detruadon de la religio kaj de la identeco mem de la tibetanoj kiel libera popolo ; la ĵusaj manifestacioj de Lasao kontraŭ la ĉina okupado estis subpremataj perforte ; ekde kiam Pekino preparas la estontajn Olimpiajn Ludojn de somero, ĉiuj defendantoj de la demokratio kaj de la libereco havas la devon fari premojn por ke Ĉinio redonu al la tibetanoj kion ĝi ŝtelis de ili. Nacio kiu tiagrade surtretas la liberecojn ne havas la rajton plibeligi sian famon per la nobla olimpia spektaklo.

Kion faros la registaroj ? Ĉu ili cedos, kiel kutime, al la ekonomia pragmatismo, aŭ trovos la forton meti niajn plej altajn etikajn kaj politikajn valorojn super la mallongdatajn ekonomiajn interesojn ?

Eĉ se la ĉinaj publikaj instancoj en Tibeto faris, tute evidente, multajn agojn de teroro kaj de detruado, multaj elementoj perturbas la simplisman vidon („la bonuloj kontraŭ la malbonuloj”). Jen naŭ punktoj kiun oni povas havi en la menso kiam oni meditas pri la lastatempaj eventoj.

1. Sendependa ĝis 1950, Tibeto ne fariĝis de unu tago al alia okupata lando. La rilato kun Ĉinio estas longa kaj kompleksa, kaj tiu ludis ofte la rolon de protekta suvereno - sufiĉas memorigi ke ankaŭ la kontraŭkomunisma Guomindang insistis pri la ĉina suvereneco super Tibeto. La termino mem de dalaj-lama atestas pri tiu interagado, ĉar ĝi asociigas la mongolan dalaj („oceano”) kun la tibeta bla-ma.

2. Antaŭ 1950, Tibeto estis sub la jugo de sovaĝa feŭdismo, kun malriĉeco (la vivespero ne estis pli granda ol 30 jaroj), endemia korupto kaj pluraj internaj militoj (la lasta, inter du monaĥaj frakcioj, okazis en 1948, kiam la Ruĝa Armeo estis jam antaŭ la pordoj de la lando !). Timante la malordon kaj la socian malintegriĝon, la tibeta gvidanta elito malpermesis ĉian disvolvadon de industrio, tiel ke la plej eta metalpeco devis esti importata de Hindio. Tio ne malhelpis tiun eliton sendi siajn infanojn al la britaj lernejoj, en Hindio, kaj transigi kapitalojn en britajn bankojn, ankaŭ en Hindio.

3. La Kulturrevolucio kiu detruis la tibetajn monaĥejojn en la 1960-aj jaroj ne estis simple „importita” de la ĉinoj : en tiu epoko, malpli ol cento da ruĝaj gvardioj iris al Tibeto, kaj la loĝantaroj kiuj bruligis la monaĥejojn estis preskaŭ ekskluzive tibetanaj.

4. Ekde la komenco de la 1950-aj jaroj, l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 konstante kaj sisteme instigis al kontraŭĉinaj agadoj en Tibeto ; tiel, la ĉinaj timoj de eksteraj provoj malstabiligi Tibeton estas neniel „malraciaj”. [1]

5. Televidaj bildoj atestas, ke la eventoj de Tibeto ne estas paca „spirita” protestado de tibetaj monaĥoj (kiel en Birmanio antaŭ ok monatoj), sed estas (ankaŭ) manovroj de bandoj mortigantaj ordinarajn ĉinajn enmigrintojn kaj brulantaj iliajn magazenojn. Oni devus do juĝi la tibetajn manifestaciojn kiel ĉian ajn perfortan manifestacion : se la tibetanoj atakas la ĉinajn enmigrintojn en ilia propra lando, kial la palestinanoj ne faru same kontraŭ la israelaj koloniantoj de Cisjordanio ?

6. Estas fakto de la ĉinoj ege investis en la ekonomia disvolvado de Tibeto, kiel ankaŭ en la infrastrukturoj, la edukado, la sanservoj ktp. Por paroli senvuale : spite al ne negebla subpremado, la nuna vivnivelo de la mezaj tibetanoj estis neniam tiom bona. La malriĉeco estas multe pli grava en la ne disvolvitaj kamparaj provincoj de la okcidento de Ĉinio.

7. En la lastaj jaroj la ĉinoj ŝanĝis sian strategion en Tibeto : „senpolitika” religio estas nun tolerata, eĉ subtenata. Ili apogas sin pli sur etna kaj ekonomia koloniado, kiu rapide transformas Lasaon en ĉinan variaĵon de la kapitalisma Far West, kun karaokejoj [2] kaj „budhismaj temo-parkoj” laŭ la maniero de Disney. Mallonge, tio kion kaŝas la bildoj de ĉinaj soldatoj kaj policanoj terorigantaj la budhismajn monaĥojn, tio estas la usonspeca soci-ekonomia transformado de Tibeto. Tiu estas multe pli timinda : en unu aŭ du jardekoj, la tibetanoj estos reduktitaj al la sama statuso kiel tiu de la indiĝenoj en Usono.

La ĉinaj komunistoj ŝajnas esti fine lernitaj la instruon : kio estas la subprema povo de la sekreta polico, la koncentrejoj kaj la ruĝaj gvardioj kiuj detruas malnovajn monumentojn, kompare kun la kapablo de senbrida kapitalismo disŝiri la tutan tradician socian teksaĵon ? Alie dirite, Ĉinio estas faranta tion kion la okcidentaj ŝtatoj kaj aliaj faras kaj faris laŭlonge de sia historio, kiel Brazilo en Amazonio aŭ Ruslando en Siberio, sen paroli pri Usono en sia Sovaĝa Okcidento.

8. Se estas tiom da manifestacioj en Okcidento kontraŭ Ĉinio, tio okazas esence pro ideologiaj kialoj : la tibeta budhismo, lerte disvastigata de la Dalaj-lamao, estas unu el la ĉefaj orientiloj de la hedonisma spiritualeco New Age, fariĝanta la dominanta formo de la ideologio. Nia fascino por Tibeto faras el tiu lando mitan enton sur kiu ni projekcias niajn fantasmojn. Tiel, dum oni bedaŭras la malaperon de aŭtenta tibeta vivmaniero, oni forgesas la verajn tibetanojn : tio kion oni volas de ili estas ke ili estu aŭtente spiritualaj por ni, anstataŭ ni, por ke ni povu daŭrigi nian frenezan konsumisman ludon.

La filozofo Gilles Deleuze skribis : „Se vi estas kaptita en la revo de la alia, vi estas perdita.” Tiuj kiuj manifestacias kontraŭ Ĉinio devus konsideri ke ili enprizonigas la tibetanojn en sian propran revon, kiu estas nur unu inter aliaj.

9. Fine, se malbona aŭguro aperas el la nunaj okazaĵoj, ĝi troviĝas aliloke. Fronte al la eksploda evoluo de la ĉina kapitalismo, la analizistoj demandas sin kiam la politika demokratio, kiu iras „nature” kune kun la kapitalismo, aperos.

ANTAŬ DU JAROJ, la sociologo Ralf Dahrendorf faris, dum televida intervjuo, komparon inter la kreskanta malfido, en la postkomunismaj landoj de orienta Eŭropo, koncerne la demokration kaj la fakto ke, sekvante ĉiun revolucian ŝanĝegon, la vojo al nova prospero pasas ĉiam tra „larmo-valo”. Post la disfalo de la socialismo, oni ne povas rekte veni al periodo de abundo en prospera merkatekonomio. Ĉar la socialismaj socia protekto kaj sekureco, limigitaj sed realaj, devis esti malmuntitaj, tiuj unuaj etapoj estas nepre doloraj.

Por Dahrendorf, tiu malfacila trairo de la „larmovalo” daŭras pli longe ol la meza periodo inter la (demokratiaj) elektoj, tiel ke la tento estas granda postŝovi la malfacilajn ŝanĝojn pro kialoj de mallongtempaj elektoj. Fareed Zakaria tiel klarigis [3] kiel la demokratio povas ankriĝi nur en ekonomie evoluintaj landoj : la evolulandoj „antaŭtempe” demokratiigitaj kreas popolismon kiu saldiĝas per ekonomia katastrofo kaj politika despotismo. Ne mirigas ke tri el la eksaj triamondaj landoj ekonomie plej viglaj (Tajvano, Sud-Koreio, Ĉilio) alvenis al demokratio nur post aŭtoritateca periodo.

Sed estas ankoraŭ alia paradokso : kio okazos se la promesita demokratia fazo post la trairo de la „larmovalo” ne alvenas ? Tio estas, eble, la plej zorgiga elemento koncerne la nunan Ĉinion. Penseblas ke ĝia aŭtoritata kapitalismo ne estas simpla resto de nia pasinteco, la ripetiĝo de la tipo de kapitalisma akumulado kiu, en Eŭropo, daŭris de la 16-a ĝis la 18-a jarcento, sed antaŭprezento de la estonteco.

Kio okazos se la malvirta kuniĝo de la azia vipo kaj la eŭropa borso montriĝas ekonomie pli efika ol la liberala kapitalismo ? Ĉu tio estas signo ke la demokratio, tia kia ni komprenas ĝin, jam ne estas kondiĉo kaj motoro de la ekonomia disvolvado, sed obstaklo al tiu ?

Slavoj ŽIŽEK.

 

Qu'est-ce qu'un événement ou un lieu biopolitique dans la métropole ?

Discussion avec Constantin Petcou, Doina Petrescu et Anne Querrien


Toni Negri : Je ne sais pas si vous avez des échos des luttes métropolitaines qui viennent de se passer. Je pense au Danemark, autour de ce " centre social " qui a été évacué par les forces de l'ordre, et pour lequel les gens ont continué à lutter pendant tout le mois d'août. Ou à cette chose formidable qui s'est passée à Rostock, en marge du G8, avec l'organisation de toute une série de luttes urbaines. Aujourd'hui, le mot d'ordre des mouvements autonomes en Europe est " reprendre la métropole, reprendre la ville, reprendre le centre ", et il s'est vraiment généralisé : ces mouvements, qui partent de l'intérieur des villes, c'est, d'un point de vue politique, une chose extrêmement importante. Et puis il y a aussi cette mobilisation énorme en Italie, à Vicenza – vieux bastion catholique, mais aussi siège d'une grosse base de l'OTAN. Le gens se sont révoltés contre un projet d'expansion de la base et de redoublement de l'aéroport militaire, parce que les Allemands ont décidé que la grande base OTAN de Francfort allait être vidée, et du coup Vicenza devient la solution de repli. Les Américains transfèrent entre Vicenza et Udine tout le potentiel d'intervention militaire qui est en particulier destiné au Moyen-Orient. Et c'est ce que les gens – pas seulement le mouvement mais les habitants de la ville – refusent. La lutte s'est donc généralisée : mouvements no global, populations du coin, catholiques pacifistes, écologistes... C'est un nouvel activisme politique urbain, c'est une image de la ville différente. Les gens disent par exemple : on ne veut pas de guerre installée dans notre ville. Bien sûr, cela n'a rien à voir avec les " centres sociaux " tels qu'ils existent en Italie ou ailleurs, ou avec Christiania. Mais c'est passionnant. À Christiania aussi, c'est impressionnant : il y a, je crois, quelque chose comme cinq cents personnes en prison à Copenhague. Le mouvement a continué pendant tout l'été. C'est un modèle de résistance... Au départ, il n'y avait aucune volonté de provocation ou d'antagonisme direct, on les appelait les " pink ". Mais, parce qu'ils luttaient pour leur espace de liberté, ils sont devenus " noirs ", " black " ! Le passage de l'idée de lieux de construction contre-culturelle à l'idée de résistance active, c'est fondamental.

Constantin Petcou : Est-ce que tu connais des expériences plus récentes que celle de Christiania ? Des expériences qui produisent des changements en douceur ?

TN : Ta " douceur ", c'est comme si tu essayais de dire que la diagonale politique peut exister en dehors du diagramme biopolitique. Ou pour le dire de manière plus brutale et caricaturale, comme si l'affirmation d'autres modèles de vie pouvait oublier la réalité des rapports de pouvoir, comme si on pouvait être " en dehors " des rapports de pouvoir. Moi, je crois qu'on est toujours obligé de considérer la diagonale politique à l'intérieur du diagramme biopolitique. Tu ne peux pas croire qu'une action qui touche la vie dans tous ses aspects les plus concrets – dans le contexte biopolitique, dans le contexte de la ville – puisse être " séparée " : on est toujours dans des rapports. Dans l'analyse que tu fais, et dans tes choix, tu dois considérer toujours le rapport qui existe entre la diagonale politique et le diagramme biopolitique.

CP : Qu'est ce que c'est exactement, le diagramme biopolitique ?

TN : Le diagramme biopolitique, c'est l'espace dans lequel les phénomènes de reproduction de la vie organisée (sociale, politique), dans toutes leurs dimensions, sont contrôlés, captés et exploités – cela touche la circulation de l'argent, la présence de la police, la normalisation des formes de vie, l'exploitation de la productivité, la répression, le bridage des subjectivités... Face à cela, il y a ce que j'appelle une " diagonale politique ", c'est-à-dire le rapport que tu as avec ces rapports de pouvoir – et que tu ne peux pas ne pas avoir. Le problème, c'est savoir de quel côté tu es : du côté de la puissance de la vie qui résiste, ou du côté de son exploitation biopolitique. Et l'enjeu dans la ville, ça passe souvent par la lutte pour se réapproprier toute une série de fonctions essentielles à la vie (la question du logement, la distribution de l'eau, la distribution du gaz et de l'électricité, l'administration du téléphone, l'accès au savoir...)

CP : Il s'agit là de luttes politiques d'une certaine échelle, plutôt globale, qui nous intéressent tous mais qui intéressent moins certaines personnes qui vivent dans l'urgence du quotidien, qui se glissent dans un quotidien que d'autres leur imposent. Lorsque nous évoquons l'espace biopolitique, nous parlons plutôt d'un espace biopolitique à petite échelle, dans lequel les habitants " quelconques " se retrouvent et re-forgent dont ils sont maîtres, dans la mesure du possible. Tous les exemples dont on a parlé jusqu'ici sont très importants mais il y a très peu de gens qui s'y intéressent, à part les activistes dans le sens fort du mot. Nous explorons un activisme d'intensité quotidienne, " doux " ou " faible ", que tout le monde pourrait pratiquer, qui commence par la résistance au consumérisme, aux projets urbains locaux qui entraînent des changements indésirables , etc. et auxquels les activistes au sens fort, qui s'intéressent aux problèmes globaux, ne trouvent pas réellement d'intérêt. Il y a donc ce clivage entre deux échelles d'action, peut-être qu'il y a encore une autre diagonale entre les échelles biopolitiques globales et les autres.

Anne Querrien : Par rapport à l'exclusion, qui est un phénomène massif dans les grandes métropoles européennes, il y a des gens qui mènent de petites luttes ou de petites actions de résistance dans une problématique qui n'est pas celle de la représentation des exclus vis-à-vis de la société globale. Il y a une série d'expériences qui passent souvent par des occupations, pas nécessairement des squats, mais avec une négociation pour occuper des espaces, pour faire vivre des espaces qui ne soient pas dans cette logique d'exclusion mais de développement de micro-puissances locales. Par exemple, nous étions hier entre deux barres HLM dans le XXe, c'était un terrain où n'il y avait que des gravats auparavant. Maintenant, avec du fric qui vient des HLM, de la Délégation à la politique de la ville, de la Mairie, de la DRAC, de la préfecture, il y a une espèce de construction où tu peux tenir une réunion, il va y avoir une bibliothèque, il y a des parcelles de jardins, et les gens des HLM d'en face viennent là en disant " tiens, qu'est ce qui se passe ? "

Doina Petrescu : C'est à travers l'espace que peut se construire un rapport avec cette diagonale politique, où tu peux commencer à t'opposer, à formuler des contre-propositions, où une contre-puissance peut émerger. Ces espaces – Félix Guattari parlait de vacuoles – sont nécessaires pour former des interstices et préciser les rapports, et que ceux qui sont assujettis à ces rapports soient dans la position directe de les formuler, de s'y confronter, sinon ils seront toujours représentés par d'autres, ceux qui sont les plus politisés, les habitués de la lutte.

TN : Tout ce que vous racontez est un terrain d'expérimentation passionnant. Je pense aussi que l'interstice représente une dimension essentielle parce qu'il permet de pointer un espace qui est précisément un " entre-deux ", qui exige donc qu'on affronte le problème des langages différents et de leur liaison, ou celui du rapport entre le pouvoir (l'exploitation biopolitique de la vie) et la puissance (la résistance qui s'exprime dans l'expérimentation d'un espace interstitiel). C'est un problème presque artistique. La question que je me pose toujours, et cela ne va pas à l'encontre de ce que vous dites, c'est finalement : " où l'exode habite-t-il ? ". Quel est l'espace pour ceux qui veulent " s'exoder " du pouvoir et de sa domination ? Selon moi, l'exode a aussi, parfois, besoin de force. Et c'est un exode qui, paradoxalement, ne cherche pas un " dehors " du pouvoir mais affirme le refus du pouvoir, la liberté face au pouvoir, à l'intérieur de ses mailles, dans le creux de ses mailles. La force... Vous parlez ici de multitudes faibles, douces... Et là, autour de ces adjectifs, il y a vraiment un problème pour moi. Dans le cas de cette production " faible " et édulcorée, quelle est la production de subjectivité spécifique ?... Quelle est la spécificité de cette production ? Où cela va-t-il ?

CP : Dans des espaces de ce type, il y a notamment des gens comme des chômeurs, des retraités ou des intermittents ; des gens qui ont beaucoup de temps et qui n'ont pas une subjectivité valorisée socialement dans le milieu social et professionnel capitaliste. Par leur implication et par la prise en charge d'une activité (cinéma, jardinage, musique, fêtes), ils produisent des positions, des rôles, des subjectivités qu'ils se construisent justement entre eux, par agrégation. Et ces subjectivités dépassent l'identité, car c'est par intersubjectivité qu'ils arrivent à cela, en créant des relations collectives. À la fin, c'est une production de projet mental et social aussi. Justement, ça arrive avec le temps, par des pratiques quotidiennes, par des durées longues, ce qui n'est pas spécifique aux luttes très visibles et frontales (d'ailleurs, Félix Guattari souligne l'importance des " territoires existentiels " qui ont une certaine durabilité dans la production de subjectivité et d'hétérogenèse). Tu ne peux pas avoir une production d'espaces existentiels dans le mouvement trop agité, donc tu dois regrouper des conditions d'hétérogenèse, ce que nous définissons comme une " alterologie ". Quand tu laisses l'autre se manifester et construire sa subjectivité, il y a moins d'agressivité, il y a plus d'écoute, plus de réciprocité. Et tu peux même arriver à des dimensions politiques sans qu'elle soient prévues au départ, comme cela c'est passé à ECObox : il y a eu des gens qui sont venus pour jardiner, après ils ont participé à des débats et, à la fin, ils étaient devant la Mairie avec une pancarte et certains parmi eux n'avaient même pas de papiers. Ils n'ont jamais imaginé qu'ils allaient arriver à ça ; et ça a été possible parce qu'il y avait un groupe et qu'ils n'étaient pas tout seuls. Il y avait une cohérence de leur projet et de leur action, l'évidence d'une " bonne cause ". Et c'est difficile, en fait d'être dans cette " alterologie ", car d'habitude il y a une logique individualiste vers laquelle le capitalisme pousse beaucoup. Est-ce que tu vois des contradictions entre les échelles du biopolitique – abstraites , générales, symboliques – , et les échelles du quotidien, de l'ordinaire ?

TN : Il y a certaines conceptions du biopolitique qui le considèrent seulement comme un terrain où se joue en réalité l'expression du biopouvoir, comme l'extrême forme par laquelle la puissance rationnelle ou bureaucratique – et instrumentale – du pouvoir politique moderne arrive à s'organiser. Il est au contraire évident que le biopolitique est quelque chose qui joue à différents niveaux ; d'abord au niveau d'une micro-confluctualité, c'est-à-dire là où ni la répression ni le consensus ne sont généralisés mais où le conflit est continuellement reproposé. Puis, deuxième niveau : quand cette conflictualité est aussi productive – le moment de lutte est aussi celui d'une production de subjectivité. La lutte des classes en tant que lutte des classes, cela n'est pas passionnant. Ce qui est formidable, c'est la lutte des classes en tant que tissu conflictuel, quand les subjectivités se proposent, se construisent à travers la conflictualité. L'exploitation est au centre de ce processus, elle est au centre du biopolitique. L'intensité de l'exploitation est quelque chose qui arrive à l'âme – ne vous méprenez pas sur ce terme : elle traverse les corps et arrive aux manières de penser et aux imaginations, aux désirs et aux passions. Et c'est sur cela, sur cette intensité corporelle et sur cette singularité pleine, qu'il faut déterminer de la résistance.

DP : Oui, mais comment ? C'est ça la question.

TN : À travers l'action, à travers le " faire ", à travers l'opérationnalité. C'est la seule façon. Autrefois, on pouvait imaginer un monde dans lequel l'anticipation intellectuelle représentait une aide pour l'action et permettait d'atteindre un certain niveau d'universalité. Aujourd'hui, la production matérielle est nourrie par la production intellectuelle, l'une et l'autre sont enchevêtrées et font partie de ce contexte biopolitique. Sans production intellectuelle il n'y aurait pas le pouvoir énorme du capitalisme. Du même coup, il faut arriver à imaginer une résistance pleine dans laquelle l'élément corporel et l'élément intellectuel soient inséparables et qui, au lieu d'être le terrain sur lequel se consolide et se reformule la domination capitaliste, deviennent la matière même d'une nouvelle organisation de la résistance. Pour moi, le problème, c'est de construire une autre société dans laquelle il y ait de la liberté, de l'égalité, de la solidarité... et de la joie. Je ne suis pas pessimiste, je ne pense pas qu'on doive limiter la résistance à de petites unités, à des micro-unités. En plus, j'ai une conception de l'histoire qui est pleine de sauts, de discontinuités, de ruptures, d'une accumulation de ces choses " douces " dont vous parlez, mais qui, pour moi, n'excluent absolument pas qu'il puisse y avoir à partir de là l'émergence d'un seuil avec lequel rompre durement pour créer de l'événement, du nouveau.

DP : Mais justement, pour arriver à ce seuil, il y a un temps d'accumulation.

TN : Il ne faut pas le théoriser. Toutes les trahisons se sont toujours passées à travers une conception du temps qui était plus importante que l'imagination de la rupture. Il est évident qu'il y a du temps – le temps de la ville, le temps du travail, le temps des déplacements, le temps entre la vie et la mort – , et c'est quelque chose qui est donné : c'est là. Mais pourquoi le théoriser ? Moi, je viens d'une génération qui a polémiqué sur tout : le réformisme, la trahison, et aussi le temps...

CP : Qui construit actuellement, d'après toi, des espaces biopolitiques ? Connais-tu aussi des exemples à petite échelle ?

TN : Je ne connais que ceux qui sont autour de moi. En Vénétie, par exemple, je connais des groupes de gens qui ont occupé leurs appartements, ils se sont mis ensemble, ils ont construit des espaces – de solidarité, de vie quotidienne, de lutte partagée, de production commune : ça peut prendre la forme de coopératives dans lesquelles ils travaillent ; ou d'associations d'entraide aux plus faibles, aux migrants, aux chômeurs, aux malades, aux vieux... Il y a, dans ce contexte, des situations de type syndical mais qui fonctionnent contre les syndicats officiels, et qui le font très bien : elles investissent un territoire extrêmement grand, extrêmement complexe, mais aussi extrêmement riche et contradictoire, mobilisent beaucoup d'hommes et de femmes et expérimentent d'autres modèles d'organisation et d'intervention politique, ou plus largement d'autres formes de vie... Sauf qu'il y a deux façons de le faire. Il y a la façon " ONG ", d'une part, et la façon " mouvement ", de l'autre. En Italie, la deuxième est de plus en plus puissante. Par exemple à Padoue, la Mairie a commencé à prendre toute une série de mesures contre le désordre et la mauvaise image que la ville pouvait avoir en accusant les prostituées de la dégradation. Mais les habitants de nombreux quartiers ont organisé une véritable " réaction à la réaction ", contre le maire et, en solidarité avec les " demoiselles ", ils ont fait des manifestations et sont allés jusqu'à murer la porte de la mairie avec des briques ! Au-delà de la question des prostituées, ils protestaient contre une normalisation répressive qui bridait plus largement leur vie. C'est un travesti brésilien, magnifique en plus, et avec un talent oratoire et une finesse politique incroyables, qui a géré toute la chose, qui l'a organisée et développée, et qui en a fait une lutte commune pour toutes les libertés. Alors : comment fait-on à partir d'une répression de la prostitution pour créer un " petit jardin pour tous " ?...

CP : Comment ces actions à petite échelle, peuvent-elles parfois se mettre ensemble ? Comment s'organisent-elles pour passer à une échelle plus importante ?

TN : Les niveaux sont extrêmement différents. Il y a un niveau de participation minimale : les gens, le soir, vont manger ou boire ensemble, ils habitent le même quartier, ils font, par exemple, une occupation de logements vides et s'organisent... Ils luttent pour conserver cette occupation. Aujourd'hui, c'est un phénomène en expansion – pas seulement parce que les gens en ont besoin, mais parce que c'est une nouvelle manière de vivre et de lutter, de créer et de s'organiser ensemble...

Au début, c'était une chose complètement ouvrière : c'étaient des ouvriers qui s'aidaient dans une tradition extrêmement ancienne mais qui, chez nous, à cause de la récente industrialisation, s'est complètement réinventée. Ce sont des expériences associatives, au fond – alternatives au mouvement ouvrier, parce que le mouvement ouvrier a fini par se réduire à un certain nombre de mécanismes staliniens. Des expériences alternatives, donc, mais complètement ouvrières quand même. Par la suite, les ouvriers ont élargi leurs revendications : pas seulement un logement, mais aussi le paiement des heures de transport par exemple. Quand les patrons ne voulaient pas le leur donner, ils occupaient la maison à côté de l'usine pour être plus près. C'est cela, le processus, dès les années 1960, en Italie. Après, avec la crise des années 1970, il y a eu, d'un côté, la défense armée – avec, par exemple, des phénomènes de lutte armée dans les usines, et surtout de défense des privilèges ou des positions sociales de certains. La violence est entrée en scène, et je vous assure que les formes de solidarité " douces " ou " faibles " auxquelles vous pensez étaient souvent l'élément fondamental de la construction de la lutte armée parce que c'étaient des terrains sur lesquels la confiance était essentielle. Paradoxalement, la " douceur " a souvent généré une réelle violence – parce qu'on est dans la réaction affective, dans la complicité de proximité plus que dans la décision politique... Il faut faire attention à tout cela...

Par la suite, on a eu de terribles défaites – avec leurs conséquences : le reflux politique, la drogue, la débandade ; plus tard encore, la renaissance des " centres sociaux " – des lieux qui tentaient de mettre ensemble des expériences politiques nouvelles, à la fois de les relancer et d'inventer quelque chose d'autre... En réalité, en Italie, c'est au début des années 1990 que tout recommence, c'est aussi une nouvelle génération. Une nouvelle génération qui n'a plus la même histoire, qui redécouvre le politique. Pas la politique institutionnelle, plutôt un autre rapport au politique capable de ce que j'appelais tout à l'heure la " diagonale politique ".

C'est la création du parti écologiste, ce sont eux qui l'ont construit, en partie de manière instrumentale, pour avoir une structure pouvant bénéficier d'aides des différentes mairies, en partie aussi parce que la préoccupation pour l'état de la planète commençait à émerger comme terrain de luttes communes... Il y a en Italie tant de ces expériences là... Tout cela, ce sont des dynamiques de mouvement. Pour arriver à ce qui est votre " modèle ", parce qu'on peut l'appeler comme cela, dorénavant : un modèle intensif, presque intériorisé, et dans lequel le passage vers la formation d'une " conscience ", d'une " prise de conscience " commune – même si ces expressions sont horribles, je ne devrais pas dire cela comme ça – est essentielle. C'est un training formidable, à la fois absolument réel et en même temps utopique, où chacun ne cesse de s'inventer avec les autres... Je ne considère pas que le qualificatif d'" utopique " soit un élément négatif en soi, mais j'aime mieux éviter qu'on s'en serve pour sortir de la matérialité des rapports de pouvoir, de la réalité – parce que c'est là-dedans qu'il s'agit d'intervenir, pas dans une dimension de rêverie irréelle... Alors, je sais exactement la réponse que vous allez me donner : " nous, nous sommes en train de nous transformer à chaque moment... " Oui, mais moi, dans la réalité elle-même, j'ai aussi besoin aussi de quelque chose qui ne dépend pas de la représentation du déjà-là. Un saut dans lequel on commence à parler non plus seulement de solidarité mais aussi de démocratie, par exemple. Il y a un moment où il faut effectuer ce saut, ce passage, poser le vrai gros problème qu'il y a derrière toutes ces micro-pratiques dont on parle, et réfléchir à la manière d'y répondre...

CP : En fait, on en parle, on n'en parle pas directement mais on agit beaucoup autour de ces problématiques. Le fait qu'il n'y ait pas de hiérarchie entre les types d'activités parce que, je reviens aux exemples basiques, il y a des gens qui sont venus pour le jardinage, et ils sont passés à des débats culturels ou politiques, mais jamais l'inverse ! On essaie de créer des transversalités dans différents sens, si possible dans tous les sens et ça parle beaucoup de démocratie, d'égalité de conditions, d'accès au savoir.

TN : Quand je définis un contexte biopolitique, à quoi est-ce que je pense ? Par exemple, à la quantité de monnaie que les institutions étatiques ou les institutions capitalistes, quel que soient leur contexte spécifique, mettent en jeu. Mais aussi, de manière mélangée, à la vie des gens. Il n'y a pas un contexte " pur ", totalement politique – ou a-politique – , ou encore, sur un autre registre, un contexte de misère totale, ou de stérilité totale, ou un espace où les rapports de pouvoir seraient saturés, ou au contraire, un espace de libération totale par rapport à ces mêmes rapports de pouvoir... C'est cela, selon moi, l'intérêt des interstices : témoigner de la complexité, et en faire une arme au lieu de la subir comme une " impureté " ou une faiblesse... Donc, pour moi, un passage d'une thématique de la solidarité et de la militance " faible " à une militance plus forte ou à une réflexion plus générale sur la démocratie, cela signifie par exemple prendre en compte toutes ces choses.

CP : Prendre en compte quoi, exactement?

TN : Tous ces flux qui s'entrecroisent, et qui sont des flux réels.

DP : Dès que tu isoles un espace, tout y est représenté : tous les conflits sociaux, les flux, et toutes les questions se posent, que ce soit celle de la disponibilité, du temps, du partage ou de l'appropriation.

TN : Avec l'ouvrier-masse, il y a trente ans, il était impossible de tenter ou même d'imaginer des formes d'" associations " de ce genre. La chose était réduite immédiatement à la famille, aux formes de reproduction sociale, à un certain type d'agrégation – au mieux à la coopérative, en général à partir de la cellule du parti. Je suis tout à fait convaincu que les nouvelles formes de production, de communication, de circulation des langages et des savoirs , aident énormément à faire fonctionner les éléments affectifs qui sont centraux dans les nouvelles " associations ". Aujourd'hui, on est dans un contexte biopolitique de travail immatériel – avec une composante intellectuelle et affective – : un contexte où ce qu'on considérait comme un " individu " est repensé comme " singularité " dans un flux de singularités plurielles et différentes qui construisent des relations et des partages, composent ce qu'elles sont et créent du " commun " nouveau. Ce n'est pas la vieille superstructure, c'est une base matérielle dans laquelle chacun est à la fois inséré et ouvert à la possibilité de construire de l'être nouveau, des langages nouveaux, des rapports et des formes de vie nouveaux, de la valeur nouvelle... Et je suis convaincu que nulle part ailleurs que dans la dimension métropolitaine la chose n'est plus perceptible et puissante. Quelque chose s'est déplacé et s'est organisé dans la métropole – on l'a bien vu avec les banlieues – ,c'est une chose fondamentale.

On pourrait citer des tas d'autres exemples. Rostock, cet été, c'est la première fois qu'en Allemagne les mouvements sont sortis de ce qui était la limite ouvrière et syndicale traditionnelle. C'est un saut important. Mais avant Rostock, il y avait eu en Europe d'autres expériences nouvelles. L'organisation des précaires, la réappropriation des espaces de production métropolitaine, des espaces de la ville... Du point de vue de la configuration sociale, c'est extrêmement nouveau. Il y a beaucoup d'immigrés dans certains secteurs du travail immatériel, il y a une immigration intellectuelle et qualifiée, et de manière plus générale une intelligence sociale partout, même chez des migrants économiques qui étaient par le passé peu qualifiés... Le rapport aux savoirs et à la coopération a déplacé complètement la différence matériel/immatériel et la question de la qualification, y compris dans l'illégalité, dans la précarité la plus absolue...

DP : Je pense que ces espaces dont on parle permettent justement cela... Ça passe par une multiplicité de types d'occupation. Certaines sont des occupations illégales, d'autres peuvent être des occupations négociées mais je dirais que le fait d'avoir un espace est extrêmement important. Ce que j'ai compris de votre séminaire sur la métropole, c'est en effet que la métropole, maintenant, comme espace de production biopolitique, est l'équivalent de l'usine, quelque part, et qu'il faut la penser comme un espace de résistance et de lutte. C'est dans la métropole qu'il faut créer ces espaces de rencontre qui peuvent prendre différentes formes, de différentes manières. Même l'espace d'un café peut être important... Pour que ce soit cumulatif, il faut qu'il y ait une récurrence, une répétition, une continuité et des temporalités sociales longues. C'est bien d'avoir Rostock mais c'est bien que Rostock se passe après Edimbourg, qu'il y ait une récurrence, une continuité.

CP : La dimension politique n'est pas naturelle. C'est plutôt une dimension sociale. Déjà, le social ça s'apprend, ça s'éduque, il y a différents types de cultures et de sociabilités. Le politique, c'est encore plus que cela, c'est de la citoyenneté, de la démocratie, de l'égalité. Pour moi, la subjectivité, le pré-individuel, c'est une sorte de condition pré-politique. Pour pouvoir agir politiquement, il faut déjà être quelque part, et nous, à travers ce que nous faisons, nous essayons d'accueillir l'émergence des subjectivités et d'aller plus loin après, si c'est possible. Mais je ne crois pas que tout le monde puisse, comme ça, tout d'un coup, agir à grande échelle politique et se connecter à des réseaux activistes. Avant, les luttes politiques passaient beaucoup par le travail, l'ouvrier... et c'est de moins en moins le cas. Nous définissons parfois les espaces que nous mettons en ¦uvre avec des habitants comme des syndicats d'habitants parce que, comme le travail n'est plus une entrée vers le politique, l'habitant, même l'immigré, offre une entrée vers une autre façon de faire de la politique.

TN : J'ai même proposé au secrétaire général du syndicat des métallos italien de transformer les bourses du travail en " centres sociaux " métropolitains... Si la métropole est le lieu dans lequel la valorisation se produit, il est évident que nous devons transformer les bourses du travail en des lieux qui ne soient plus réservés aux seuls " opérateurs " du secteur mais ouverts à la totalité des hommes et des femmes qui permettent la production... Il faudrait des syndicats des citoyens, avec une attention fondamentale à ceux qui sont les plus fragiles et exploités : les migrants, les femmes, les jeunes, les vieux... Le secrétaire général n'était pas contre, il était même assez fasciné par l'idée...

DP : Je voulais poser une autre question, celle de l'invention et de la créativité, car, comme tu le dis, tu forces quelque part ce personnage politique à faire quelque chose de nouveau, un peu inattendu : regarder le même espace d'une autre manière, pour le transformer de bourse de travail en " centre social ". C'est selon moi un acte créatif.

TN : Je pense qu'en réalité, un lieu biopolitique comme la ville est un espace de croisements, de rencontres et surtout d'expression intellectuelle, politique et éthique qui devient de plus en plus important. Il faut imaginer cela exactement comme on a toujours considéré le langage, ou la construction de richesse : comme des accumulations. Mais comme des accumulations qui sont plus qu'une simple addition de parties. La création, ce n'est pas un acte de génie et, surtout, ce n'est pas quelque chose d'individuel, ou qui appartiendrait aux seules avant-gardes. C'est pour cela que le copyright par exemple est toujours profondément arbitraire et presque criminel : c'est un acte d'appropriation aux dépens d'une réalité multitudinaire, commune. Et la politique, cette politique dont nous sommes en train de parler, a affaire avec l'organisation, la structuration, l'institutionnalisation du biopolitique comme subjectivation commune et résistante. Le biopolitique est plein d'institutions possibles. L'institution est aussi un excédent du réel. L'État est plus vieux et plus pauvre que les mouvements. Depuis que j'ai compris cela, j'ai commencé à penser que l'institution devait devenir une réalité continuellement ouverte, dans laquelle le pouvoir constituant serait non pas exclu mais intégré. Une institution en devenir permanent. En général, on considère que le pouvoir constituant sert à fonder un système, et c'est tout. Dans le système des sources du droit, le pouvoir constituant n'existe pas en tant que tel, c'est un élément pré-juridique ! Il doit céder la place au pouvoir constitué qui, seul, peut créer des institutions. C'est là qu'il faut rompre. Non, le pouvoir constituant peut être un élément juridique, c'est-à-dire une institution qui doit continuellement produire d'autres institutions. On a alors besoin d'un lieu pour cela. Ce lieu, je crois que c'est aujourd'hui la métropole.

CP : Et comment garder ce pouvoir constituant presque permanent qui ne s'institutionnalise pas ?

TN : Un pouvoir constituant produit des sujets, mais ces sujets doivent se mettre ensemble. La production de subjectivité, ce n'est pas un acte d'innovation ou un moment de génie, c'est une accumulation, une sédimentation pourtant toujours en mouvement, c'est construire du commun en constituant des collectivités. Il y a beaucoup de mouvements qui ne laissent pas d'accumulation véritable. D'autres, oui. Pensez aux banlieues : il y a eu cette révolte formidable. La prochaine fois, la chose partira à un niveau beaucoup plus haut, politiquement. Il y a des seuils d'accumulation irréversibles. Et pensez à Rostock : je ne veux pas dire que cela a représenté un nouveau 1905 révolutionnaire, le début d'un nouveau cycle de révolutions. Je dis juste que c'est la première fois qu'en Allemagne, depuis la lutte contre les missiles au milieu des années 1980, il y a eu une véritable mobilisation nationale pour laquelle les éléments construits par la base, les formes de coopération et d'articulation, les discussions et les points de consensus entre les gens – ceux qui font des expériences comme la vôtre, ceux qui en font d'autres, ceux qui viennent de revenir vers la politique en se rendant compte qu'ici, c'est de la vie qu'il s'agit... – bref, toutes ces expériences de médiation avec la diagonale politique sont devenues fondamentales. Toute une créativité sociale et politique s'est accumulée et a trouvé une occasion pour s'exprimer et prendre corps, et tenter de s'organiser. Et ça n'a pas été une insurrection sauvage, désorganisée, spontanée. La dimension métropolitaine est fondamentale, la question du précariat l'est tout autant. Il faut donc repenser la construction et l'organisation du politique par le bas. Le problème de la démocratie n'est pas seulement celui de l'antifascisme : c'est la construction d'objectifs, de dimensions conflictuelles et projectuelles partagées, c'est mettre ensemble, c'est créer du commun à travers les différences... C'est une capacité à fonctionner ensemble.

Paris, le 17 septembre 2007